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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 Pyeonchang 9일차

  • WOOK
  • May 12
  • 3 min read

출발지 : Kirovsky

도착지 : Bikin

주행거리 : 118.00km

주행시간 : 9:05:50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까지 약 700km를 향해 달린 지도 어느덧 5일째다.

가끔 지나가는 오토바이 라이더들이 엄지를 치켜세워 주지만, 절반이 넘는 거리를 달려오는 동안 자전거 여행자는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어쩌면 세상에 나 같은 별난 사람은 많지 않다는 반증일 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전날 숙소에서 만난 소아과 전문의라는 분은 숙소 앞에 세워진 거대한 호랑이 조형물을 가리키며 실제 호랑이와 곰이 출몰하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밤에는 절대 라이딩하지 말라고 몇 번이고 당부했다. 웃으며 들었지만 속으로는 살짝 겁이 나기도 했다.

오늘도 끝을 알 수 없는 평원이 이어졌다. 간혹 낮은 산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주변은 끝없이 펼쳐진 참나무 숲이었다. 대관령과 비슷한 기후 때문인지 이제 막 연둣빛 새잎들이 돋아나고 있었는데, 그 풍경이 참으로 장관이었다. 옛말에 나무 가운데 으뜸이 참나무라 했던가.

아버지 말씀으로는 예전 대관령이 고랭지 채소밭으로 바뀌기 전, 화전농들이 화전을 하기 이전의 대관령은 온통 참나무 숲이었다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마을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겨울을 날 땔감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울력으로 지게나 리어카를 끌고 가까운 산부터 시작해 점점 더 먼 곳까지 나무를 하러 다녔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해마다 어디에선가 제무시 트럭에 참나무를 한가득 실어 오셨다. 산림감시원에게 들키면 큰일 나는 일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일하는 걸 좋아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참나무를 도끼로 패는 일은 자연스럽게 내 몫이었다. 초겨울, 바짝 얼어 단단해진 참나무는 오히려 더 잘 갈라졌다. 조금 과장하면 도끼만 갖다 대도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던 기억이 난다. 러시아의 끝없는 참나무 숲을 바라보니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살아 났다.

어느새 48km를 달렸지만 가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중간중간 길가에 멈춰 물과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며 계속 페달을 밟았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도로 위로 작은 언덕 하나가 나타났는데, 그 위로는 기차가 지나가는 선로가 이어져 있었다.

75km 지점에 이르러 잠시 쉬어갈 만한 구조물을 발견했다. 엉덩이라도 붙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웠다. 빵 두 조각을 먹으며 숨을 돌렸다. 거의 다섯 시간 가까이 달리는 동안 제대로 먹은 것이 없었다.

그 무렵부터 도로 주변은 자욱한 연기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산불이 아니라 들불이었다. 달려오는 동안 불에 탄 흔적들이 자주 보여 궁금했는데, 사람 하나, 소방차 한 대 없는 모습을 보니 혹시 국토 관리 차원에서 일부러 불을 놓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 더 가자 온 세상이 연기로 가득했다. 들불은 도로 바로 옆까지 번져 있었고, 붉은 화염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라 가까이 다가가 영상을 찍는데, 순식간에 불길이 내 코앞까지 밀려와 깜짝 놀라 황급히 물러났다.

나는 다시 달렸다. 이제는 어디든 쉬어갈 수 있는 쉼터 하나 나왔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던 중 라이딩 중인 56세의 현지 자전거 여행자를 처음 만났다. 번역기를 사용해 대화를 시도했지만 서로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조금 더 달리자 작은 마을과 함께 식당 하나가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간단한 식사를 주문했다. 식욕이 없어서 주스와 스프만 시켰는데, 오랜만에 뜨거운 국물이 몸속으로 들어가니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370번 도로는 비교적 상태가 좋은 편이었지만, 갓길이 없는 구간이나 갑자기 나타나는 포트홀을 지날 때면 식은땀이 흐르곤 했다. 100km 지점쯤 되었을까. 새벽부터 달린 탓인지 졸음이 밀려왔다. 경사진 도로 옆 풀밭에 잠시 몸을 눕혀 눈을 붙였다.

잠시 토끼잠을 자고 깨어나 보니 주변이 온통 분홍바늘꽃 천지였다. 얼마나 반갑던지. 우리나라에서는 대관령목장 일대에서만 군락을 이루는 귀한 꽃이라, 마치 고향 친구를 먼 타국에서 우연히 만난 기분이었다.

얼마나 더 달렸을까. 몸도 마음도 지쳐 오늘은 대체 어디서 자야 하나 걱정이 밀려오던 순간, 저 멀리 숙박이 가능해 보이는 카페 하나가 나타났다.

“야호!”

역시 나는 행운의 사나이였다.

안으로 들어가 뷔페식 음식을 주문해 맛있게 먹고 숙박이 가능한지 물었더니 흔쾌히 “오케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땡큐!”를 연발하며 자전거를 맡기고, 천 루블을 내고 4인실 방에 들어왔다. 샤워를 하고 빨래를 마친 뒤 침대에 몸을 맡기니 그제야 긴장이 풀린다.

잠시 쉬면서 하바롭스크에서 울란우데까지 열차로 이동하는 방법을 주영과 장0구 사장님과 의논하고, 다시 도로변으로 나가 한적한 풍경 속에서 느긋한 망중한을 즐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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