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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 Pyeongchang 15일차

  • WOOK
  • May 18
  • 2 min read

새벽 5시, 다시 길을 나선다.

숙소 주변에는 대형 트럭을 포함한 차량 수십 대가 운집해 있다. 장거리 운전자들이 밤새 피로를 풀고 쉬어가는 공간이다. 공기는 제법 차갑다. 우모복 위에 비옷까지 겹쳐 입고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50km 가까이 달렸는데도 얕은 언덕 하나 나타나지 않는다. 끝없는 평원이다. 그러다 도로 가장자리에 사진과 꽃이 놓인 비석이 눈에 띈다. 이 길을 달리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기리는 장소인 듯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비석에는 1987년생이라고 적혀 있다. 딸과 동갑이다. 가족들이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낯선 타국의 도로 위에서 남의 일이 아닌 듯 마음이 먹먹해진다.

한참을 달리다 모처럼 비포장도로 구간이 나온다. 지나가던 운전수 한 명이 반갑게 무언가 말을 건네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도 표정만큼은 정겹다.

70km 지점쯤 식당 하나가 보여 반가운 마음에 들어갔더니 오후 12시부터 영업이라고 한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 나오려는데 손짓하며 들어오라고 한다. 이렇게 따뜻한 식당은 처음이다.

메뉴판의 그림만 보고 음식을 주문한다. 잠시 후 닭고기 수프가 나온다.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갈 떠먹는 순간, 차갑게 식었던 몸이 서서히 녹아내린다. 만두 다섯 개도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먹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역시 자전거였다. 어떤 자전거를 선택할 것인가를 두고 오래 고민했다.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자전거도 좋은 자전거였지만, 장거리와 장시간 라이딩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여기 저기 수소문을 하던 중 과거 대우그룹 임원을 지내다 그만두고 자전거로 세계를 여행했던 차○성 님의 자전거 등 여러 자전거를 추천 받았는데, 서○석 님이 보관 중이던 자전거를 선택하게 되었다.

네덜란드제 자전거인데, 2014년 조선일보가 독일 베를린에서 한국까지 이어지는 유라시아 횡단 행사를 주최했을 당시 실제 사용되었던 자전거라고 한다. 수많은 검증을 거쳐 선택된 장거리 여행용 자전거였다.

비록 오래된 자전거지만 서○석 님은 행사 진행 역할을 주로 맡아 실제 주행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상태는 새것이나 다름없었다. 전문가의 말로는 지금 기준으로 새 제품 가격이 4천 달러 정도는 한다고 했다.

서○석 님은 그냥 타고 다녀온 뒤 돌려달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최소한의 감사 표시라도 하고 싶어 100만 원을 드리며 협조를 부탁드렸다.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여행용 가방을 쉽게 장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패드식 브레이크에 전후미등, 흙받이, 스탠드까지 이미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장거리 여행을 위해 따로 손볼 것이 거의 없었다.

내가 무사히 유라시아를 횡단하고 다시 돌아간다면, 이 자전거는 어쩌면 세계 최초의 ‘유라시아 왕복 자전거’가 되는 것 아닐까.

다시 한번 서○석 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끝없이 이어지던 완전한 평원이 서서히 끝나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기 시작한다. 숨을 몰아쉬며 언덕을 넘는데, 어느 순간 눈앞에 거대한 물빛이 펼쳐진다.

바이칼 호수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바이칼 호수를, 지금 나는 자전거를 타고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117km 정도를 달려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바이칼 호수가 잘 보이는 숙소를 찾고 싶었는데, 누군가 시골역 2층 숙소를 알려준다.

짐을 풀고 창밖을 바라본다.

내일 다시 출발하기 전까지, 이 거대한 호수를 마음껏 눈에 담아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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