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Pyeongchang 20일차
새벽 한 시.
바람이 어찌나 거세게 부는지 텐트가 통째로 날아갈 것만 같다. 몸으로 텐트를 붙잡고 버티고 또 버티지만 점점 추위까지 몰려온다. 결국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카페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훈훈한 온기가 몸을 감싼다.
안에서는 젊은이 네 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인터넷도 되지 않아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과 몸짓으로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따뜻한 음료와 과자까지 챙겨준다.
참 따뜻한 사람들이다.
고마운 마음에 준비해온 브로치를 선물로 드렸더니, 한 젊은 여성이 자신이 직접 썼다는 책을 선물로 건네준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왜 이렇게 친절한지 모르겠다.
러시아식 만두를 시켜 먹고 텐트를 정리하려는데, 카페 직원 두 명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결국 밤 두 시, 텐트를 철수하고 카페 2층의 넓은 공간에 자리를 잡는다. 50평은 되어 보이는 큰 독방에 매트리스를 깔아준다.
한밤중의 뜻밖의 해프닝이다.
몸을 누이니 문득 예전 생각이 떠오른다.
알파인 스키에서 메달의 꿈을 이루고 난 뒤, 나는 다시 크로스컨트리 스키에 도전했었다. 당시 조선일보 마라톤대회에 처음 출전해 풀코스를 3시간 8분 38초에 완주할 만큼 몸 상태가 좋았던 시기였다.
그 당시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처음 신어 본 상황이었지만 야간에도, 알파인 슬로프에서도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신고 열심히 노력했다.
첫 대회에서 강원도 대표로 선발되어 40km 계주에 출전했지만 결과는 2위. 이어 전국체전 30km 개인 경기에서는 4위를 기록하며 아쉽게 포디움에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강원 대표로 40km 계주 경기에 출전했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전국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금메달을 하루 종일 목에 걸고 다녔다. 그날의 기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새벽 네 시 반.
바람만 조금 잦아들면 출발하려고 침낭을 정리하다가 창밖을 본다.
그런데 눈이 내리고 있다.
아니, 5월 말에 눈이라니.
순간 멍해진다. 눈보라까지 몰아치는 상황에서는 라이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홍보단에서는 이미 이르쿠츠크에서 옴스크까지는 열차로 이동하라고 강하게 권유했었다. 하지만 나는 “일단 달려보다가 필요하면 트럭커 점프를 해보겠다”고 고집을 부렸었다.
그런데 강풍에 눈보라까지 맞닥뜨리니 출발을 늦춰야 할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을 너무 걱정하게 해서 되겠는가...’ 큰 고민에 빠졌다.
결국 옴스크 방향으로 가는 트럭을 알아보기로 마음먹는다.
오전 11시.
남자 직원 두 명이 내 말을 이해했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넷도 되지 않으니 소통 자체가 어렵다. 밖에는 여전히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친다. 어차피 라이딩은 불가능하다.
그저 기다릴 뿐이다.
답답한 마음에 건너편 주유소로 간다. 옴스크 방향 차량들이 서는 곳이기 때문이다. 직원 한 분이 “기다려보라”는 손짓을 하며 친절하게 와이파이를 연결해준다.
그 순간 카카오톡 알림이 폭발하듯 쏟아진다.
몇 시간 동안 연락이 되지 않자 난리가 났던 모양이다. 경찰에 신고까지 되었고, 영사관에도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연락이 닿자 수색은 종료되었지만, 사건 종결을 위해 이르쿠츠크 경찰서로 출두하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나는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앞으로 나아가다가 옴스크에서 경찰서에 들르기로 하였다.
적어도 노보시비르스크나 크라스노야르스크까지는 이동해야 한다.
하루 종일 지나가는 차량마다 다가가 사정을 설명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 오후 다섯 시쯤.
한 대의 트럭이 들어온다.
용기를 내어 다가가 “크라스노야르스크까지 태워달라”고 부탁하자, 운전기사는 환하게 웃으며 흔쾌히 허락해준다.
얼마를 드리면 되냐고 묻자 손사래를 친다.
“노, 노.”
나는 연신 “땡큐, 땡큐!”를 외친다.
자전거도 겨우 짐칸에 싣고, 출발 전 함께 식사를 한다. 기사분은 옆자리 여성 운전자들의 차량까지 손봐주며 여유롭게 웃는다.
그리고 드디어 출발.
트럭 창밖으로 펼쳐지는 시베리아의 풍경은 자전거 위에서 보던 세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지금 시간이 저녁 여덟 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해는 아직 중천에 걸려 있다. 끝없는 평원과 숲, 구름 사이로 떨어지는 빛이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시베리아를 제대로 보려면 어쩌면 트럭 위가 가장 좋은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기사 이름은 세르게이.
서른한 살.
나는 오늘 또 한 명의 천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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