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Again Pyeongchang 21일차

May 24
2 min read

출발 : Cheremkhovo

도착 : Krasnoyarsk

이동 : 트럭이동

​

새벽 여섯 시.

세르게이의 알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사실 그보다 먼저 잠은 깼지만, 작은 소리라도 내어 그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숨소리조차 조심하며 누워 있었다.

세르게이도 일어나 차에서 내려 화장실로 향한다. 밖으로 나가보니 카페 주변에는 어마어마한 수의 대형 트럭들이 줄지어 쉬고 있다. 끝없는 시베리아 벌판을 누비며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현장이다.

간단히 씻고 식사를 하러 들어가려 했는데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이라 준비가 안 된 모양이다. 세르게이가 차 안에서 먹자고 손짓한다.

순식간에 트럭 운전석이 작은 조리실로 변한다.

한국 부탄가스 버너를 꺼내고, 물을 끓인다. 오리온 초코파이도 보인다. 따뜻한 차와 함께 식빵 사이에 소시지를 넣어 만든 간단한 샌드위치를 먹는다.

내게는 더없이 멋진 성찬이다.

아침 7시경, 다시 길을 나선다.

크라스노야르스크까지는 아직도 650km가 남아 있다. 오늘은 또 어떤 추억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가 된다.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또 지난 시간이 떠오른다.

​

크로스컨트리 스키까지 목표를 이루고 난 뒤, 나는 다시 바이애슬론에 도전했었다.

첫 시합에 출전했는데 일반부 참가자는 단 세 명이었다. 한 명은 당시 국가대표 에이스 신병국 선수, 또 한 명은 전 국가대표 선수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꼴찌겠구나.’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사격에서는 15발 중 몇 발을 놓쳐 115m 벌주를 몇 바퀴나 돌아야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렸다.

결승선에 가까워지자 갑자기 큰 응원 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에는 단순히 나이 많은 사람이 열심히 뛴다고 격려해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다.

전 국가대표 선수를 1.7초 차이로 제치고 2위를 한 것이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 순간이었다.

곧이어 열린 대한바이애슬론협회장배 계주 경기에서는 황금 멤버에 합류해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그렇게 나는 스키 종목의 그랜드슬램을 이루게 되었다.

​

시베리아 횡단도로를 달리는 트럭 안에서는 경쾌한 음악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아름다운 선율과 광활한 자연이 어우러지며 마음속 깊이 추억으로 쌓여간다.

​

오늘은 부처님오신날.

그리고 아내의 생일이다.

나는 시베리아의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속 선물로 아내에게 보낸다.

별난 성격의 남편을 만나 마음고생이 많았을 텐데, 늘 미안하고 또 고맙다.

중간에 카페에 들러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계산하려 하자 세르게이가 단호하게 손을 막는다.

“러시아에서는 손님에게 대접하는 거야.”

그 말에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식사를 하는 동안 창밖에는 눈과 비가 번갈아 내린다. 시베리아의 날씨는 정말 종잡을 수가 없다.

​

세르게이는 한국 제품을 무척 좋아한다. 사용하는 모니터도 삼성이고, 현대·기아차도 잘 알고 있다. 차 안에는 오리온 초코파이, 새콤달콤, 마이쮸 같은 한국 과자들이 항상 비치되어 있다.

집에서는 검은 고양이와 강아지도 키운다고 한다.

내가 부족한 실력이지만 노래 한 소절을 뽑아내자, 세르게이가 웃으며 가수냐고 농담을 건넨다.

트럭 안이 한동안 웃음으로 가득 찬다.

​

달리던 중 시베리아 철도와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을 두 번이나 지나간다. 그때마다 대형 화물차들이 길게 멈춰 서서 기다린다.

끝없이 펼쳐진 목초지에서는 울타리 하나 없이 소들이 풀을 뜯고 있고, 목동은 비를 맞으며 말을 타고 소 떼를 몰고 있다.

참 인상적인 풍경이다.

​

오후 4시 30분.

드디어 세르게이의 차고에 도착한다.

약 1000km의 대장정이 끝난 것이다.

그런데 세르게이가 오늘은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한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진심 어린 호의라는 것을 느끼고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한다.

맥주 세 병을 사 들고 함께 아파트로 간다.

씻고 난 뒤, 내 유튜브 영상을 함께 본다. 러시아에서는 유튜브 접속이 자유롭지 않아 컴퓨터를 연결해 겨우 시청한다.

참 좋은 사람들이다.

저녁 식사를 하며 세르게이와 맥주 한 병씩 나눈다. 아버지는 최근 고양이에게 물려 항생제를 복용 중이라 술은 못 드신다고 한다.

1968년생인 아버지는 경찰 출신이다. 점프를 무려 401회나 했다고 한다. 경찰을 그만둔 뒤에는 운수업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스키 선수 출신이었는데 55세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여동생은 21세에 결혼했다고 한다.

​

낯선 시베리아의 밤.

세르게이 부자와 나누는 정담이 깊어간다.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