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Pyeongchang 19일차
출발 : Irkutsk
도착 : Cheremkhovo
주행거리 : 125km
51km 지점, 지금은 트럭 운전사들이 쉬어가는 작은 카페에 앉아 있다. 아침을 먹지 못하고 출발했기에 따뜻한 음식을 주문해 허기를 달랜다. 낯선 자전거 여행자가 신기한지 트럭커들이 하나둘 다가와 말을 건넨다. 서로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번역기를 이용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꽤 즐겁다. 길 위에서는 이런 우연한 만남들이 큰 힘이 된다.
오늘도 새벽 다섯 시에 길을 나섰다. 새벽길 특유의 고요함과 빗속 라이딩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하지만 우비를 입고 달리는데도 얼마나 추운지 몸이 점점 굳어가는 느낌이었다. 주영이가 챙겨준 우모복이 생각났다. 배낭에서 꺼내 겹쳐 입자 거짓말처럼 금세 체온이 올라온다. 거기에 얇은 비닐장갑까지 장갑 속에 끼니 손끝 시림도 견딜만 하다.
바이칼에서 이르쿠츠크로 넘어올 때는 산 하나를 넘는 데 얼마나 가파른지 거의 60km 구간동안 몇 번이나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야 했다. 정말 온몸의 힘을 다 써 버릴만큼 힘이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125km를 달리는 동안 제대로 된 언덕 하나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평지다.
문득 어린 시절 생각이 난다. 나는 초등학교 때 잠시 스키선수를 했었다. 하지만 운동신경도 뛰어나지 않았고 장비도 형편없었다. 초등학생이 195cm짜리 스키를 타고 있었으니 제대로 탈 리가 없었다. 결국 대회에서는 딱 한 번 3등을 해본 것이 전부였다.
마지막 시합에서도 또 넘어지기를 반복하자 화가 난 아버지는 학교 옆 언덕에서 스키를 100번 타고 오라고 하셨다. 순진했던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듣고 해가 질 때까지 쉬지도 않고 계속 타고 있었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결국 형을 보내 “이제 그만 타고 오라”고 하셨다.
그때 마음속 깊이 메달에 대한 한이 맺혔던 것 같다.
성인이 된 뒤 나는 용평스키장 1기 패트롤로 들어갔다. 강사 일을 하면서도 점심까지 굶어가며 죽기 살기로 스키를 탔다. 정말 스키가 좋았다.
1985년 3월 3일 결혼을 하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전국 스키 지도교사 경기대회에 출전했다. 12명을 선발하는 대회였는데 결과는 등외였다.
이를 악물었다.
1987년에는 6위, 1988년에는 2위. 그리고 마침내 1989년 제5회 대회에서 챔피언이 되었다. 꼴찌가 1등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기세를 몰아 1990년 전국체전에 출전해 은메달 세 개를 따냈고, 같은 시즌 회장배 전국스키대회에서는 4관왕까지 차지했다. 그렇게 평생 마음속에 남아 있던 알파인 스키 메달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오늘 라이딩도 어쩌면 그 시절과 비슷하다.
90km 지점까지는 왕복 4차선 도로에 갓길까지 넓어 마치 나만을 위해 전용 차선을 만들어놓은 듯한 기분이었다. 황제 라이딩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였다.
하지만 하루가 늘 그렇듯 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언덕은 없었지만 오후가 되자 무서운 맞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아무리 힘껏 페달을 밟아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느낌이다.
100km 지점쯤 작은 마을이 보여 숙소를 물어봤지만 없다고 한다. 30km 정도 더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어쩔 수 없이 다시 길을 나선다.
125km 지점에 주유소를 겸한 작은 카페가 나온다. 혹시 숙소가 있는지 물었지만 역시 없다고 한다. 이제는 맞바람 때문에 더 이상 달릴 힘도 남지 않았다.
결국 텐트를 쳐도 되겠냐고 조심스럽게 묻자 흔쾌히 괜찮다고 한다.
서툰 솜씨로 텐트를 펼친다. 그런데 막상 완성하고 보니 제법 아늑하다. 오늘 하루 나만의 작은 보금자리가 생긴 셈이다.
러시아 여행을 하며 정말 할 수 있는 경험은 거의 다 해보는 것 같다.
문제는 이곳에 인터넷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휴게소 카페인데 인터넷조차 없다니. 아마 주영이와 지인분들이 엄청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텐트 안은 이상할 만큼 편안하고 평화롭다.
카페 직원은 CCTV가 보이는 곳에 텐트를 치라고 했는데, 그 말 덕분인지 큰 위험은 없을 것 같다. 자전거는 텐트 입구에 기대어 놓고, 혹시 몰라 끈 하나를 발목에 묶어두었다.
오늘은 씻는 것도 생략한다.
그저 이렇게 하루를 무사히 마친 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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